지난겨울 엄마와 주케어하는 언니와 함께 산책한 날의 기억을 적어보려고 한다.
2018년 엄마는 평일에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다니게 되셨다.
엄마도 예측이 가능한 주간 시간을 보내고 나와 가족들에게도 자유 시간이 생겼다.
그런 자유시간이
매일 저녁이 되면, 주말, 공휴일이 되면
다시 여지없이 사라져
온 가족이 치매 엄마와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기를 올해로 13년.
해가 갈수록,
그 증세가 초기-중기-말기로 가면서 많이 익숙해졌다고도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마다 다시금 쓰나미 같은 놀라운 충격과 화와 당황함이 우리 생활을 흔든다.
사실 그런 상활들은 그 순간 당시만 지나고 보면
" 그나마 이만하길 다행이다"하고 다시 지나가는 게 대부분이라
또 다시 익숙해진다.
지난 금,토,일 언니는 감기기운으로 3일 연속 엄마와 집안에서 지냈고 병문안 겸 엄마를 보러 엄마 댁에 갔다.
누었다 앉았다 여러 번 반복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언제 왔냐? 연신 묻는다. 수시로 안방과 거실을 오가다 패딩을 걸치고 나와
" 나, 집에 가야겠다. 우리 엄마가 기다려" 하신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 나는 "어딜 가려하느냐 여기가 엄마집이다" 하고 실랑이도 참 많이 했었다.
못 나가게하면 더 화내시고 소리도 지르시고.
그러나 지금은 치매를 아주 조금은 이해한다.
아픈 언니는 " 잠깐만 기다리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하며 바로 일어나신다.
언니는 참 효녀다.
엄마의 옷을 더 단단히 따뜻하게 챙기고 모자와 목도리도 해드리고
우리도 그렇게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빨간 인형 엘모를 아기라고 들고 나가겠다고 하신다.
패딩에 털모자를 쓰고 엘모를 껴안고 엄마는 집을 나선다.
집 주변, 신년이 지났지만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옆을 걸으니
인생을 즐겁게 사는 우리 엄마라는 생각에 미소가 나온다.
스피커폰으로 나훈아의 노래 10곡 정도를 들을 동안 천천히 동네를 걷는다.
엄마는 꽤 많은 구절을 따라 흥얼거리면서
" 누군지 노래 참 잘 부른다" 하신다.
"엄마 나훈아 오빠도 잊은 거야? "
"홍시"
노래가사가 오늘따라 귀에 꽂힌다.
<홍시>
------ 나훈아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적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바람불 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 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 세라 사랑 때문에 아파할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필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한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의 치매 시작으로, 엄마의 치매가
식구들과 내 인생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고
원망과 억울함에 힘들어하면서,
이 노래는 그저 낭만이다. 미화된 것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3년 전 투병 생활이 너무 힘드신 아버지를 보며
그만 가셔도 될 것 같다 잠깐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진짜로 진짜로 먼 길을 떠나시고 나니
"불효자는 웁니다 " 노래가 마음 깊이 들려온다.
나도 이러는데
우리 엄마는 본인의 엄마가 얼마나 그리우실까?
엄마를 찍어둔 영상을 틀어놓으면 똑 닳은 모습이라 생각하시는 건지
"엄마, 엄마 나여기 있어", "엄마 어디가~"소리치신다.
본인이 35세 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18세 딸이 고향 고창을 떠나 서울로 가서
25세 시집간 딸을 그리워한 그 엄마( 나의 할머니 )도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60대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를 뵌 기억이 없다.
나는 아직 그 사무친 그리움을 완전히는 알지 못한다.
나훈아의 "홍시" 노래 가사처럼
"울 엄마가 생각난다.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이 노래가 사무쳐질 날이 나에게도 올까?